티스토리 뷰


배우 전원주에 전직업은 성우인데요 그녀는 1939년 9월 20일 경기도 개성 출생입니다.

저희 할머니도 개성 출신이셔서...더욱 더 애착이 가시는 분이시네여


그녀는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엘리트입니다. 

전원주의 학창 시절인 1950년대 말은 대학진학률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낮았습니다. 

더구나 남녀차별도 심했던 시절이라, 남자에 비해 여자의 대학진학률은 훨씬 낮았습니다. 

딸을 대학까지 보내는 집은 부잣집이거나 시대를 먼저가는 깨인 집이었습니다. 


성함

전원주[全媛珠]

출생

1939920[79]

일본제국령조선 경기도 개성부

,몸무게,혈액형

150cm-51kg- AB

본가가족관계

슬하2

출신학교

덕성여자고등학교

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

첫작품

1963년 동아방송 1기공채성우

종교사항

불교 [법명:대원행]



옥천군 최고에 부잣집 딸이었던 육영수도 배화여자고등보통학교만 졸업하였는데 

많이 배운 사람으로 칭송받았으며, 그 경력으로 고향에선 교사로 일했을 정도. 

숙대 졸업 후 교사로 일하다가 1963년 성우로 데뷔, 1972년 배우로 전향했습니다.





원래부터 배우에 뜻이 있었습니다. 자신이 방영에선 밝힌 바에 따르면 교사로 일하던 시절 키가 매우 작아 칠판에 글씨를 쓰기가 힘들어 배우로 전향했습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. 웃자고 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로 이것 때문에 꽤 스트레스도 받았던 듯. 또 자신이 직접 밝힌 이유로는, 훈육주임이 여학생들을 나란히 세워놓고 차례로 뺨을 때리다가 끝에 서있던 작은 키의 전원주까지 학생인 줄 알고 뺨을 때려 기절까지 했습니다고에. 요즘 같으면 아무리 작아도 어떻게 학생과 교사를 구별 못하냐고 하겠지만, 당시는 여교사들도 학생 교복 유사한 유니폼을 입고 다녔기에 더 헷갈리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고.에 이 사건 후 교사를 그만두고 성우로 전향했습니다고 합니다.



그런데 당시 방영계에선 매우 못생겨서 곤란하다고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합니다. 후에 배우가 되었지만 여전히 생긴 걸 문제삼아 중요한 배역을 주지 않았고, 게다가 58세 때인 1996년에 한 드라마에선 외출 나온 군인들의 전투모를 벗겨가서 화대와 교환하자고 하는 매춘부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. 그리하여 식모 역할만 꾸준히 주어졌습니다. 드라마 주인공의 어머니 역할을 한 적도 있지만, 또한이나 주인공 집안이 가난하다는 설정에 전원주는 주인공 어머니임에도 직업이 또 식모이거나 하는 식이었습니다. 젊은 날에는 이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듯. 

전형적인 이전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시어머니에 일종의 아들바보라 며느리들을 꽤 못마땅해합니다. 단 실제 방영에선 하는 말하고 표현하는 것과는 다르게 할 건 다 해주는 타입인듯 합니다.





그러나 이렇게 쌓인 이미지가 실제 우리네 어머니를 매우 닮았고, 

이러한 공감대를 통하여 당시 여주인공들, 사모님들에 비해 더 오래, 더 관심리에 배우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.

그러다가 1990년대 중후반에 개그우먼 김미화의 추천으로, 배우생활 처음으로 성인대상 심야 코메디 프로그램에 주요 구성원으로 참석하게 되는데, 코메디 세상만사의 코너 '사미인곡'에선의 부잣집 푼수 아줌마 역할이 그것입니다. 거기서 호탕한 웃음소리와 '다음에 또 모이면 떼레뽕[텔레폰] 때려줘', '된장 뜨러 간다 된장 뜨러 가' 등의 유행어를 탄생시켜 재미있고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게 되며, '전원주가 부잣집 마나님 역할을 해도 재미있을 수 있겠다'는 인식 또한 만들게 됩니다. 그리하여 데뷔 이래 처음으로 이슈 연예인이 되어, 점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. 이때부터 광고도 주인공으로 참석하게 되고, 드라마에선의 참석 빈도수도 늘고, 역할도 부잣집 부인 역할도 점점 하게 됩니다. 그녀가 참석했던 관심 드라마들도 '요즘 관심있는 전원주 덕을 봐서 더 잘 되었습니다'는 관심도 공공연하게 있었습니다.